자료2009. 11. 18. 12:49


  사실 '신물이 난다' 대신에 '치가 떨린다'라고 적으려고 했는데 미국에서 아이폰 곱게 쓰고 있는 주제에 치를 떨고 있으면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해서 제목을 바꿨다. 지난 8월 미국에 오자마자 한 일이 바로 AT&T 대리점에서 아이폰을 산 것이다. 아이팟터치를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애플의 UI는 말그대로 우월하다. 지금까지 한국에 있으면서 다양한 휴대폰, 풀터치폰, PMP 등등을 만져 보았지만, 이들의 UI는 애플에 비하면 정말 조악한 수준이다. 아이폰의 등장에 겁먹은 제조사가 이제야 제대로된 스마트폰을 국내에 출시하기 시작했지만 기능적인 면에서 역부족인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들이 언론을 동원하여 아이폰 깎아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출시 2년이 넘도록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지 못한 것은 한국 대기업들의 독과점에서 비롯된 이동통신 쇄국정책 덕분이다. 이 쇄국정책을 통해 통신사들은 지금까지 엄청난 폭리를 취해 왔다. 정보이용료 2500원을 내고 미니게임천국같은 게임을 받는 데에 데이터통화료는 대개 3000원을 넘는다. 국내 출시되는 폰에만 WiFi 무선인터넷 기능이 빠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데이터통화료 이게 좀 짭짤하니까.

현재 아이폰 사용이 가능한 국가들.


  게다가 통신사가 이런 식의 폭리를 쉽고 편리하게 취할 수 있게 해주는 WIPI라는 체제를 수년째 휴대폰 의무탑재 기능으로 유지시켜 왔다. 아이폰이 국내에 바로 출시되지 못한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고, 휴대폰으로 보통 인터넷 대신에 네이트-매직엔-이지아이-쇼 등으로 기억되는 조잡한 서비스에 한번에 몇천원씩 내고 접속해야 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WIPI 의무탑재는 올해 초 해제되었다.) 해외에는 번듯이 최신 기능을 달아서 출시하지만 국내에는 디자인만 바뀌는 식의 우롱을 한국인들은 몇 년째 당해 왔다.
  근데 소비자들의 성화에 못이겨 드디어 아이폰이 출시될 예정이라고 하니 국내 제조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이에 제조사는 엄청난 손해로 이어질 아이폰을 막기 시작했다. WiFi 기능을 미탑재시킨다느니 보안 어쩌구 타령 하면서 NESPOT등 등록된 AP에만 WiFi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느니 하는 시도를 하려다가 시원찮자 급기야 제조사는 국내 언론을 동원하여 아이폰 깎아내리기에 나섰다. 아이폰은 이러이러한 점이 안좋은데 삼성폰은 이것도 된다!라는 식의 기사를 남발하는 것이다.
  은근히 한쪽 편을 드는 기사를 슬쩍슬쩍 흘려서 소비자들을 세뇌시키는 언론의 작태는 정치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웃긴 기사는 아이폰이 "쇼 도시락"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깎아내리는 기사였다. 어떤 멍청이가 아이팟 터치를 포함하는 유연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놔두고 저런 서비스를 이용하겠는가. 이외에도 한글 어플리케이션이 적다, 카메라가 안좋다, 배터리가 짧다 등등 시덥잖은 단점들만 부각시키면서 삼성폰을 추켜세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삼성 제품이 항상 제일이고 삼성 사는 게 애국인 줄 아는 소비자들을 계속 우물 속에 가둬 두려는 속셈이 눈에 훤히 보인다. 무단전재니 어쩌구 할까봐 본문인용은 못하겠고, 링크만 몇개 걸어 본다.

국내상륙 아이폰 '쇼'는 없다
http://media.daum.net/digital/internet/view.html?cateid=1008&newsid=20091104144004959&p=ned
  읽으면서 실소를 금치 못했던 기사. 쇼 동영상, 쇼 도시락, 쇼 앱스토어 등을 사용할 수 없다면서 친절하게 표까지 만들어서 T옴니아에게는 '지원', 아이폰에게는 '불가' 딱지를 붙어둔 모습이 가관이다. '불가' 딱지가 붙은 것들은 하나같이 훨씬 우월한 기능들로 대체가능하고, FMC도 안정성이 입증된 스카이프 어플 쓰면 그만이다. T옴니아에게 '토종 스마트폰'이란 이름을 붙여주면서 보조금 문제를 이야기하며 대놓고 편을 들고 있다.

윈도우 폰 아닌 '스마트폰' - 컨버전스 서비스 '불통'
http://www.betanews.net/bbs/read.html?&mkind=334&page=1&num=476720
  국내개발 기술의 지원불가를 예로 들며 노골적으로 윈도우기반 플랫폼을 옹호하는 기사이다. 40자에서 한글자라도 넘어가면 문자요금이 5배로 증가하는 MMS는 사실 정말 웃긴 시스템이다. 아이폰에선 그냥 장문이나 사진 이메일로 보내면 그만이다. MS가 아니면 불이익이 증가한다고 굵은 글씨로 강조하고 있다. MS의 노예인 우리나라와 ActiveX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선 그만해야겠다. 

  반면 아이폰과 통신업계의 상황을 정확히 직시하고 따끔한 말을 하고 있는 기사도 있다. 정치경제면에서도 삼성이나 여당과는 거리가 먼 언론에서 나온 기사라는 점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KT, 아이폰 도입이 끝이 아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29665
  통신산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현재 한국 통신시장의 문제점을 정확히 꼬집고 있으며, 나아가 우리나라 IT산업의 발전이 무엇에 가로막혀있는지를 정확히 짚어 주고 있다. 기자가 엠파스를 구축한 적이 있는 시스템 엔지니어라는 점도 와닿는다.

이동통신 쇄국정책 '아이폰'에 무너지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87193.html
  아이폰과 같은 외산 스마트폰의 출시가 국내통신업계를 이미 바꾸어 놓은 것을 간단히 정리한 기사. 이동통신 쇄국정책이 근절되면 소비자에게도 개발자에게도 더 많은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제 십여일 후면 한국에서도 정상적으로 아이폰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사실 나같은 뼛속까지 공대생 입장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아이폰의 압승이지만, 과연 아이폰이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어떨 지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애플 아이폰의 국내성공여부와는 관계없이, 통신시장의 이러한 부조리가 해결되어 거대통신기업이 아닌 모든 소비자와 개발자가 현대기술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Posted by jongw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