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08. 7. 23. 19:53

2006년 9월 25일 월요일 오전 12시 45분

유난히 집중이 안 되던 지난 주말, 문득 내 문서 폴더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일기 파일들을 열어 읽어보았다. 2004년과 2005년 동안 내가 생각한 것들의 기록을 읽어나가면서, 나의 시간들을 평가할 수 있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회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 2004년은 나를 세워준 한 해였고, 2005년은 나를 높여준 한 해였다. 물론 누구나 점점 성장하는 것이지만, 나는 그 배경이 한국과학영재학교이기에, 그리고 내가 두 살 어린 동생이었기에, 조금은 특별했다. 지금 생각할 때에, 2006년 1학기의 학교생활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학생회 활동, 오케스트라 활동, 학업활동 그리고 해외연수까지, 한국과학영재학교의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모두 누리고 졸업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2년 반 동안의 한국과학영재학교 생활은 성공적이었다.

이제 나에게 새로운 사회가 등장했다. 아직 마음은 고등학교에 남아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 이제 더 이상 방마다 돌아다니며 수업에 보내는 사감선생님도 없고, 11시 50분까지 기숙사에 돌아와야 했던 제한도 없다. 하지만 이제 지나치는 모든 사람이 아는 사람이고, 그들에게 인사하고, 밥 먹었냐고 묻던 그런 생활도 없어졌다. 적어도 나는 여기서 새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회인 대 사회인으로 만나고 있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 하지만 별 수 없다. 머지않아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겠지 라고 생각할 뿐이다.

사실, 조금씩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내가 왜 조기졸업을 했을까. 저번 주말에 학교에 잠시 들렀었다. 잠시나마 다시 고등학생이 된 느낌에, 1박 2일간의 고등학교생활을 만끽했었다. 급식 먹기가 싫어지던 날이면 시켜먹던 음식들, 선거의 감칠맛을 더해주는 전자개표, 수 년을 함께 지낸 동기들, 후배들, 사감선생님과의 실랑이, 이어지는 무단외출, AA모임, 수업, 외출증 끊고 나간 노래방, 아름드리모임, 강제자습 ... 좋아하던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다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느껴지는 곳으로 돌아온 것에 즐거웠었다. 내가 카이스트로 조기에 진학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반년 뒤 다른 대학으로 갔다면 어떤 모습일까.

서울대 지원 인원이 70명이나 될 정도로, 고등학교 동기들은 카이스트를 기피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결정하고 노력하는 이유, 카이스트보다 서울대학교를 선택하는 이유를 나도 이해할 수 있다. 이곳의 재학생들은 카이스트를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한 몸 과학연구에 다 바치고, 오직 나라의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단체로 사육시키는 곳이 바로 카이스트이고,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는 자신들을 한탄하곤 한다.

전에 최재원 선배가 밥을 사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카이스트가 폐쇄적이라고, 분위기가 다양하지 못하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자기가 원하고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는 곳, 하지만 항상 수동적인 자세만으로 살아간다면 국가적인 양계장에서 알을 낳는 닭에 지나지 않게 되는 곳이 바로 카이스트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나 역시 여기 이곳에서 다양한 삶을 살고 싶다. 아직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대학생활의 기쁨을 누리고 싶다. 내가 한국과학영재학교에 가길 정말 잘했고 2년 반동안의 생활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수년 뒤 카이스트를 졸업할 때 정말로 후회없는 날들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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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어렸던 고등학교 1학년 나이의 내가
대학교에 와서 처음 생각한 것들이 저런 것이었다ㅎㅎ

그때까진 일기랍시고 하드디스크 깊숙히 폴더 만들어놓고 꼬박꼬박 써왔었는데
이젠 그러지도 않아서 그간 글솜씨가 많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혼자 앉아서 곰곰히 생각해보곤 하는 여유가 없어졌다.

한국과학재단에 한학기마다 한번씩 학업을 이러이러하게 진행했다고 써내는 것이 있다
전에는 이러저러한 것들 공부했고 이러저러한 것들 더 하고싶다고 술술 잘 썼는데
지금은 영 막막하다.

확실히 전보다 배운 것도 많고 경험도 많아졌지만
마음의 여유는 너무 부족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학기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좀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지내게 되면 좋겠다.



Posted by jongwook